텔아비브 욥바교회 2024년 6월 1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사기 강해 3 에훗의 일격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삿 3:29-30)
1868년 요르단의 디본에서 돌로 된 비석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840년경 모압의 왕 메사가 세운 석비였다. 메사 왕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모압을 해방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성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왕하 3:4-5,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매번 조공 바치던 애가 이스라엘에 승리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그래서 석비까지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석비는 고고학적으로 너무도 중요한 발견이다. 여기에는 ‘그모스, 이스라엘, 여호와, 다윗의 집’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비석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역사성, 다윗 왕조의 역사성이 입증된 것이다. 그런데 이 비석을 살펴보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사기 3장에 모압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1400년경 이스라엘은 18년 동안 모압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한 시대에 사사 에훗이 어떻게 모압의 압제를 끊어냈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삿 3:11-12,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평화의 시대가 주는 위기가 있다. 그것은 안일함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평화의 시기를 누리면서 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게 된다. 안일한 신앙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눈 앞에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악을 행하며 살아갔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웃 나라인 모압의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셨다. 여기서 ‘또’로 번역된 ‘봐요씨푸(ויספו)’의 원형 ‘야싸프(יסף)’는 ‘더하다, 증가시키다’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평화의 시대가 길어지면서 더 많은 악을 증가시킨 것이다. 이스라엘이 죄를 더할 때 하나님은 적국의 왕에게 힘을 더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여부는 군사력에 달려 있는 게 아니었다.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신앙 상태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지는 것은 적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하나님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죄를 더하면, 우리의 대적이 강해지고 결과적으로 우리 삶이 흔들리는 것이다. 한 나라에 죄가 가득해지면 그 나라의 기초가 흔들리며 결국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삿 3: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여기서 ‘봐예에쏘프(ויאסף)’는 ‘그리고 그가 모았다’ 라는 뜻이다. 모압 왕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을 불러 모아 연합군을 형성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런데 ‘봐예에쏘프’는 우리가 앞절에서 살펴본 ‘봐요씨푸’와 음이 비슷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더한(야싸프, יסף) 것은 결국 그들을 압제하기 위해 적국 모압이 다른 민족을 모으는(아싸프, אסף) 결과를 가져왔음을 본문의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종려나무 성읍, 즉 여리고가 모압 연합군에 의해 점령 당했다. 여리고는 샘이 많아서 많은 상인과 여행객들이 머물던 도시였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너무도 중요한 도시였다.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손도 안 대고 얻은 도시였다. 그런 여리고를 이제 모압 왕 에글론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잊어 버릴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물로 주셨던 것을 거두시는 것이다.
삿 3: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다른 나라의 왕을 섬긴다는 것은 그 왕이 만든 정치, 경제, 종교 시스템의 영향 아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곧 주권의 착취, 경제적 수탈, 종교적 굴복이 따르게 된다. 이것은 결코 행복한 경험이 아니다. 특히 메사왕의 석비를 보면 모압 사람들이 섬기는 그모스 신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그의 석비를 보면 이렇게 씌어 있다. “1행: 나는 메사, 그모스의 아들이자 모압의 왕이며 디[본 사람이다] 2행: 나의 아버지는 왕으로 모압을 30년간 다스렸다. 3행: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나는 케리코에 그모스를 위해 이 산당을 만들었다. 4행: 왜냐하면, 그가 나를 모든 왕들로부터 구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내 모든 적들을 굴복시켰기 때문이다.” 메사는 자신을 그모스의 아들이라고 칭한다. 모압의 왕인 에글론 역시 자신이 그모스의 아들이란 자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모스는 전쟁의 신이었고 인신제사로 유명했다. 모압 사람들은 스스로를 ‘그모스의 백성’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자녀를 그모스에게 불살라 바치는 예식을 통해 자신들의 서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열왕기하 3장을 보면 모압 왕 메사도 후에 이스라엘과의 전쟁 중에 전세가 기울자 자신의 맏아들을 그모스에게 불태워 바친다. 너무도 잔인한 인신제사가 그모스신이 가져다 준다는 풍요와 전쟁의 승리에 대한 믿음 때문에 행해진 것이다. 이 모압의 그모스 숭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받아들여진다.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다른 우상들을 섬기니 그들의 삶은 18년 동안 비참한 자리로 떨어졌던 것이다.
삿 3: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18년의 압제로 인해 이스라엘은 괴로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은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을 돌이키기 위함이다. 고통 중에 그들의 마음이 가난해져서 다시 하나님을 찾는 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자로 베냐민 지파의 에훗을 세우신다. 에훗의 이름은 ‘영광이 어디에 있는가?, 힘은 누구로부터 나오는가?’라는 뜻이다. 당시 그모스에게 최고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시대에 그는 영광과 힘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를 수식하는 말 중에 ‘왼손잡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은 왜 왼손잡이를 사사로 세우셨을까? 여기서 왼손잡이는 히브리어로 ‘이쉬 잇테르 야드 예미노 (איש אטר יד ימינו)’다. 여기서 잇테르는 ‘닫아버리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말의 문자대로의 뜻은 ‘오른손의 능력이 닫힌 사람’이다. 이것이 왼손잡이의 정의다. 그런데 70인역은 이를 ‘양손잡이’로 번역한다. 다른 사람에 비해 왼손이 발달하여 두 손 다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베냐민 지파 중에 700명의 정예병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왼손잡이였다. 삿 20: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이들은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정예병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오른손도 쓸 수 있지만 전투력 향상을 위해 오른손 사용을 제한하고 왼손의 기능을 향상시켰던 것이다. 에훗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결정적인 순간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왼손을 연마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에훗을 통해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쳤다. 그의 직업은 조공을 바치는 사신의 대표였다. 그는 나라를 대표하는 고위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삿 3:16-17,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에훗은 좌우에 날이 선 칼을 직접 만들었다. 그는 이스라엘 해방의 날을 위해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싸움에 가장 최적화된 자로 자신을 연마했을 뿐 아니라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무기도 준비했다. 우상숭배와 인신제사, 불의한 착취 아래 모두가 고통받고 절망하는 시대에 에훗은 그 시대를 역전시킬 수 있는 자로 자신을 준비한 것이다. 에글론을 암살하는 것은 곧 그와 그 나라의 신 그모스 숭배를 끊는 행위였다. 그는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자로 자신을 준비했다. 자신의 직업과 일상에서 하나님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자로 자신을 준비한 것이다.
삿 3:18-19,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에글론 왕이 은밀한 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은밀한 일을 혼자 듣기 위해 다른 신하들을 다 물러가게 한다.
삿 3:20-22,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다. 에훗의 왼손이 클로즈업 되고, 그 왼손을 뻗쳐 오른쪽 허벅지 위에 찬 칼집에서 칼을 뽑아 왕의 몸을 찌르는 장면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장면이다. 에훗의 일격은 적군의 왕을 죽인 것 만이 아니라 그들의 신, 그모스의 영향력을 끊어낸 일격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한 순간을 위해 자신의 왼손을 수없이 단련하며, 적국의 왕 앞에 서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는 거사를 마친 뒤 에브라임 산지로 피신한다. 그리고 거기서 모압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삿 3:27,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은 쇼파르를 불며 전쟁을 소집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에 반응하여 그를 따른다.삿 3:28-29, “에훗이 앞서 가며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장악하여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에훗은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 ‘따르라’는 히브리어 동사 ‘라다프(רדף)’는 수동적으로 남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뭔가를 붙잡기 위해 바짝 뒤쫓아가는 것을 말한다. 에훗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의 열정을 전달하고 있다. 자기와 동일한 열정으로 모압을 쳐부수러 가자고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인다. 그들이 죽인 만 명은 모두 장사요 용사였다. 그런데 ‘장사’는 히브리어로 ‘샤멘(שמן)’이다. ‘기름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압 왕 에글론도 비둔한 자였는데, 그의 군사들도 모두 살찐 사람들이었다. 모압 사람들이 18년 동안 이스라엘을 착취하며 얼마나 그들의 배를 채웠을 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삿 3:30,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에훗의 일격을 통해 결국 이스라엘은 80년의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다. 에훗은 사사시대에서 가장 긴 평화의 시대를 이끌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탐욕이 우상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탐욕으로 살이 찐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시스템을 섬기며 신음하고 있다. 하나님은 잊혀져 가고 다른 우상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우상들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날 선 검을 우리는 준비하고 있는가? 진리를 압제하는 어두움의 세력에 일격을 가할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연마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는 리더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히 4:11-13,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평화의 시대를 이끌기 위해선 이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우리가 세상에 일격을 가하고, 세상에 가득한 우상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탐욕이 우상이 된 이 시대를 역전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이 있어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 말씀이 있어야 탐욕의 노예가 되는 이 시대에서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연마하여 이 어두운 세상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자들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가 있는 일상 속에서 참된 안식과 평화의 시대를 이끄는 사람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