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예배 2024년 10월 26일 설교 이익환 목사
히브리서 1: 계시의 완성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1-2)
지난 7월 북한 압록강 유역에서 큰 홍수가 있었다. 그 피해로 이천 오백에서 삼천 명이 사망했거나 실종했다고 한다. 홍수가 밀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떠내려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늘부터 우리는 히브리서를 살펴보고자 한다. 히브리서의 헬라어 제목은 ‘프로스 에브라이우스(ΠΡΟΣ ΕΒΡΑΙΟΥΣ)’이다. ‘히브리인들에게’란 뜻이다. 히브리서를 쓴 저자는 당시 믿는 유대인들이 박해와 거짓 교훈이라는 거센 물결 때문에 흘러 떠내려 가지 않게 하기 위해 히브리서를 썼다. 그가 제시한 진리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있던 1세기 교회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믿는 유대인들은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예수는 하나님이다”란 그들의 고백이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유대인들에겐 신성모독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마제국과 동족으로부터의 핍박이라는 거센 물결 앞에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세상속으로 흘러 떠내려가는 배교의 현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믿는 유대인들이 유대교로 다시 돌아간 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신앙 때문에 받는 박해가 커서라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쉽게 포기한 것이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흐름을 막고자 펜을 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편지에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설명한다.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먼저 히브리서 기자가 소개하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여기서 ‘옛적’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를 가리킨다.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은 인간을 죄와 세상 임금인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다. 그것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유대인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구약 시대 하나님이 주신 계시였다.
그 계시는 창세기 3장부터 나온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구약시대에 주어진 계시였는데,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성취된다. 다음은 출애굽기 말씀이다.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 당시 어린 양의 피를 믿음으로 바른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죽음의 재앙이 그들을 넘어갔다. 이것이 유월절에 벌어진 구원의 역사였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오셔서 유월절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그 의미가 성취된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한 희생양으로 피 흘리셨음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이후 성막에서의 제사 역시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통해서만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구원의 예표였다. 이후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예언을 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는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고, 이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을 통해 성취된다.
하나님은 이처럼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모양으로 그분의 구원 계획에 대해 계시해 오셨다. 그러나 구약의 계시는 부분적이었고 불완전한 것이었다. 이는 장차 구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점진적인 계시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어 구약의 여러 계시들을 완성하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구원의 최종적인 계시자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은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셨다. 여기서 ‘상속자’는 헬라어로 ‘클레로노몬(κληρονομον)’인데, 이는 히브리어 ‘고엘’과 같은 말이다. 즉 하나님은 예수님을 기업 무를 자로 삼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 값을 대신 지불하는 고엘로 오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모든 세계를 지으신 창조주라는 것이다. 사도 요한 역시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한다. 요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예수님을 이렇게 증거한다.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하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게 되고, 또한 생명의 빛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요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또한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하는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시다. ‘형상’이란 단어의 헬라어는 ‘카라크테르(χαρακτηρ)’다. 영어 단어 ‘Character’가 여기서 왔다. 고대 헬라어에서 ‘카라크테르’란 단어는 ‘스탬프를 사용해 동전에 남긴 정확한 자국’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성을 그대로 찍어낸 인장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면서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하는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만물을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1세기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이런 예수님을 주목한다면 그들은 현재의 어려움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게 될 것이다. 오히려 믿음에 굳게 서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의 통치와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결론을 제시한다. 히 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히 2:2-3,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천사는 헬라어로 ‘앙겔론(αγγελων)’인데, 이는 ‘말씀의 전달자’를 뜻한다.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의 사자들을 통하여 언약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자신을 섬기는 그들을 무조건 잘되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범죄하고 불순종했을 때 심판이 따른다는 것이 언약의 내용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함으로 심판이라는 공정한 보응을 받았다. 히브리서 기자는 같은 논리로 신앙에서 떠내려가는 유대인들에게 경고한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인간은 죽으면 그만인 존재가 아니다. 한 번 죽은 이후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존재다. 우리는 모두 그 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선고를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생에서 당하는 어려움과 핍박은 사실 더이상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해서 보여주신 큰 구원을 확실히 붙잡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자신의 영혼의 문제를 제쳐 두고 온통 다른 것에 관심을 쏟으며 살아간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까?’ ‘뭘 해야 재밌게 살 수 있을까?’ 이러한 관심 때문에 그냥 세상의 시류에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히 2:3-4,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여러분에게 있는가? 여러분이 복음을 믿는 않는 이유가 있다면, 여러분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경험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예수님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 보내신 당신의 아들이다. 그분은 여러분의 죄 값을 대신 값기 위해 생명을 주신 여러분의 고엘이시다. 그분은 여러분의 생명을 존재하게 하신 여러분의 창조주시다. 여러분은 그분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그분을 통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예수님이 세상에 와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화목케 되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독교 변증학자인 오스 기니스(Os Guiness)는 기독교 서구 사회를 몰락시킨 세가지 물결에 대해 말했다. 첫번째는 Red wave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한 막시즘이란 물결이다. 두번째는 Black wave다. 이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시작된 급진적 이슬람주의의 물결이다. 세번째는 Rainbow wave다. 이는 ‘LGBTQ Revolution,’ 즉 성 혁명이다. 성 혁명의 설계자인 빌헬름 라이히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수천 년의 문명을 전복하려 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두 가지 주요 적이 있다. 하나는 가족이고, 두 번째는 교회다.” 성 혁명을 이루기 위해 3세 아동을 위한 성교육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가족과 교회의 권위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성 혁명이 일어나면 가족과 교회는 해체되거나 파괴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가족과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반란이다. 이상의 세가지 물결이 기독교 가치관으로 세워진 서구 세계를 이미 점령했고, 지금도 점령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를 위협하는 홍수 역시 이 세가지 물결이다. 그 중 성 혁명의 물결이 가장 심각하다. 지금 38개 OECD 국가 가운데에 아직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혼 합법화가 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동성혼이 합법화된 나라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현상은 교회가 쇠락하는 것이고, 사생아 비율이 폭증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라고 설교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설교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다른 종교를 차별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게 된다. 성 평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성 혁명의 물결을 막기 위해 10월 27일, 내일 온 교회가 광화문 거리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200만 명이 모이는 예배로 준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 가지 않는다.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세상은 결코 그 보응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바라기는불신의 시대, 다원주의의 홍수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유일한 구원자로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주님과 끝까지 동행하는 사람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