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예배 2025년 1월 11일 설교 이익환 목사
히브리서 12: 흔들리지 않는 나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히 12:28-29)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 전쟁과 테러로, 정치 불안과 경제 침체로, 기후 변화와 화재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갈망한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다고 말한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무엇일까? 오늘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지난 주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노아는 홍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고 백 이십 년 동안 배 하나만 만들었다. 그것은 그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는 결단을 했다. 그것은 그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보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후에도 이름 없는 여러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한다. 히 11:35-38, “…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믿음의 사람이라고 고통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믿음 때문에 더 큰 고난을 겪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과 핍박과 순교의 위협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38절의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는 표현은 ‘세상이 그들에게 아무 가치가 없었다’란 의미이다. 그들의 관심은 흔들리는 세상에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의 시대에 다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낙담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돌아갈 본향을 바라보며 언젠가 그들의 믿음이 실상으로 나타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뻐했다.
자 이제 12장이 시작된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믿음의 경주를 지켜보는 증인들이 있음을 강조한다. 여러분이 주인공인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보라. 여러분은 지금 마라톤의 가장 힘든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그게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 관중석에서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때부터 영화는 슬로우 모션으로 진행된다. 노아가 나를 향해 박수 친다. “나는 120년 동안 배를 만들었어.” 그 옆에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를 향해 응원한다. “나는 100살 때 이삭을 낳았지.” 그 옆에 모세가 외친다. “나는 애굽 왕자의 옷을 벗고 광야를 선택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가슴에 품었기에 환경과 상황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던 믿음의 선배들의 응원이 이어진다. 이 응원 때문에 나는 다시 힘을 내어 결승선을 향해 질주한다. 영화는 승리의 환호 가운데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고난 때문에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려는 1세기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그들의 경주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믿음의 증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믿음의 경주는 다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내 기분이 나쁘다고 그만 둘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는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경주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경주만 하며 살아도 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겐 때로 감당해야 할 믿음의 경주가 있다. 이 경주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감당할 수 있는 경주이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길 때 믿음의 경주는 무거워진다. 내 육신의 죄에 얽매일 때 믿음의 경주는 힘들어진다. 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내 앞에 두신 믿음의 경주를 우리가 완주해야 이 땅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한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경주를 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면한다. 1세기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동족으로부터의 사회적 위협과 핍박이 가해졌다. 환경과 상황을 바라보면 낙심할 이유 밖에 없었다. 믿음의 경주에는 이처럼 시련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갖 핍박과 시련을 이기시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셨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그 결과 주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이 사실은 믿음의 성도들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할 동기를 부여한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 때문에 부끄러움과 고난을 당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서 받게 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다가 다른 사람이 보이거나, 내가 처한 환경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믿음의 경주가 힘들어 진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걷던 베드로도 풍랑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지게 되었다. 그 때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하셨다.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풍랑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제자들은 앞으로 지상에 남아 교회를 세우며 거친 풍랑을 헤쳐 나가야 할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거친 풍랑 속에서도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자들이 되길 원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의 모든 잘못된 기대와 야망, 의심은 광풍에 흔들려야만 했다. 바람과 함께 그들의 생각 속에서 떨어져 나가야 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 이 땅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셔야 했다. 그러기 위해 제자들 안에 있는 세상적인 생각들을 흔드신 것이다. 그들은 이제 이 땅에서 진행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광풍도 흔들 수 없는 견고한 믿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여러분이 지금 피곤하여 낙심한 마음이 있다면 예수님이 경험하신 어려움을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을 가셨다.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셨다. 그 결과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인내하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성도들이 이르게 된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실체를 이렇게 묘사한다. 히 12:22-24,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 이르러 언약을 받았다. 그러나 신약시대 성도들을 시온 산에 이르러 새 언약 백성이 되었다. 여기서 시온 산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은유이다. 그것은 새 언약 아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장차 받게 될 나라이자 이미 이 땅에서 소유하고 있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인 것이다.
히 12: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구약 시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그 소리가 땅을 진동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여기서 ‘진동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샬류오(σαλευω)’인데, 이는 ‘흔들다, 휘젓다’란 뜻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하나님이 다시 한번 세상 나라를 흔드실 것에 대해 말한다. ‘땅 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학개서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다. 학 2:6-7,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을 흔드시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히 12: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세상 나라를 흔드시는 이유는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해서이다. 세상 나라가 흔들려야 사람들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갈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진동할 것들, 즉 만드신 것들은 변하거나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결론을 제시한다.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히브리서 기자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은 성도들로서 이제 은혜를 받는데 힘 쓰자고 권면한다. 그것은 경외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말하는 것이다.
끝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히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소멸하는 불’은 오직 진실한 것을 남기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가서에도 그런 표현이 인다. 아 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의 마음이 다른 우상에게 빼앗기는 것을 질투하시는 분이시다. 다른 것을 다 불 태워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얻기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갈망하기까지 이 세상 나라는 계속해서 흔들릴 것이다.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경계의 말을 남겼다. 벧후 3:10-13,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 세상 나라들은 흔들리는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세상은 불로 소멸되지만,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믿음의 경주를 마친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날이 오기까지 주를 경외하는 예배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흔드는 환경이나 사람들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안전해 보이는 삶을 동경하며, 더 큰 집에서 살거나 더 큰 배에 올라타기를 원한다. 그러나 큰 배를 탔다고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없다. 더 크게 흔들릴 뿐이다. 큰 저택도 한 순간에 잿더미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사탄과 세상은 계속해서 믿음의 경주를 감당하는 우리를 흔들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한 것,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소망하는 자로 일어서기를 원하신다. 믿음의 경주가 힘들 수 있다. 피곤하고 낙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우리는 포기 해선 안된다. 우리가 끝까지 완주해야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믿음의 경주는 무엇인가? 바라기는 인내로 그 경주를 감당하며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는 여러분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