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토라포션: 창23:1-25:18 /왕상 1:1-31 /마 2:1-23
토라포션 4 사라의 일생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창 23:1-4)
나의 어머니는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떠나시기 전 날 작은 쪽지에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을 적으셨다고 한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살전 5:16-17,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아들인 나에게 주시는 마지막 유언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못나오셨다. 세상적으로 아무 자랑할 타이틀이 없다. 그런데 나는 우리 어머니가 자랑스럽다. 나에게 신앙이라는 거대한 유산을 물려주셨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토라포션에는 사라의 일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평생 남편을 따라 이동했던 삶이었다. 노년에 아들 이삭 하나를 낳아 길렀던 삶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성경은 이 한 여인의 삶을 주목하고 있다. 오늘은 이 땅에서 어머니로 살아가고, 앞으로 어머니로 살아갈 모든 여성분들을 위해 사라의 삶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사라는 창 11:30절에서 처음 등장한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그녀는 임신하지 못해서 자식이 없는 여인으로 나온다. 그런데 사라의 인생 비전, 사라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었다.
창 17:15-16,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하나님은 이 비전을 사라의 나이 89세에 확인해주신다. 아들을 낳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약속은 그녀의 나이 90세에 이루어진다.
사라는 그녀의 65세에 남편과 함께 가나안으로 떠났다. 아브라함처럼 ‘떠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남편과 함께 길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사라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 가난안 땅에서 25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90세에 아들을 낳으면서 사라는 이 상황이 웃겼던 것 같다. 창 21:6-7,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사라는 그래서 아들의 이름도 ‘웃음’이라는 뜻을 가진 이삭이라고 짓는다.
유대인의 전승을 기록한 미드라쉬는 사라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의 장막에 있었고, 집문은 넓게 열려 있었으며, 그녀는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가정에 근심이 생겼다. 첩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벌어졌다. 이에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한다. 창 21:10,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당시 풍습은 종이라도 장자를 낳으면 그 장자가 장자권을 상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내쫓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브라함은 이로 인해 근심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창 21:12,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남편들은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특히 기도하는 아내의 말은 100% 순종해야 한다. 이 일은 사라가 단순히 질투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사라는 평생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며 살아온 여인이었다. 특히 그녀는 언약의 성취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사라는 그 언약이 이루어지도록 단호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탈무드는 “하나님은 세상 어디에서나 다 계실 수 없어서 가정에 어머니를 보내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정이라는 작은 요람을 통해 온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어머니가 있는 곳에 믿음의 자녀들이 자라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던 사라를 통해서 언약의 자녀인 이삭이 길러졌다.
유대인이 되는 조건은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사라에 의해 신앙교육을 받았던 이삭을 ‘The first Jewish baby, 최초의 유대인 자녀’라고 생각한다. 이삭은 사라가 그녀의 죽음 뒤에도 이 땅에 남긴 그녀의 유산이었다. 그녀가 기른 이삭은 어떠했는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려했다. 자신을 묶어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려는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사라는 그녀의 장막에서 하나님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들을 길러낸 것이다.
사라는 이삭이 36살이었 때, 그녀의 나이 127세에 죽었다. 미드라쉬에 의하면 사라는 아브라함처럼 수를 다하고 죽지 않은 것으로 본다. 언약의 자녀로 키운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아 사라의 영혼이 떠났다고 기록한다.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를 위해 매장지를 구입하고 지금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에 그녀를 묻는다.
그리고 사라가 없는 4년의 시간이 지난다. 그 후 아브라함은 종 엘리에셀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내 아들 이삭을 위한 아내를 구해오게 한다. 리브가였다. 그녀는 종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했다. 그래서 아버지 브두엘과 오빠 라반이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고 물었을 때,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한다. 가족들은 그런 리브가를 축복하며 말한다. 창 24:60,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리브가는 사라처럼 어머니가 되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그녀가 받은 축복의 말은 사라가 받은 말과 같았다. 창 22:17,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는 것이었다.
이 말이 뭘까? 창세기에는 최초의 여자를 유혹했던 뱀과 그 꼬임에 넘어간 여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있다. 창 3:14-16,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학자들은 창세기 3:15절을 원시복음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태가 없었던 사라의 태를 열고 아들을 주셨던 것 처럼 처녀 마리아의 태를 여셔서 아들을 낳게 하셨다. 그리고 그 여인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인류가 거짓 아비 사탄에게 종노릇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길을 여셨다.
갈 4:4-7,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해 언약의 세대를 일으키는 일을 사라의 일생을 통해 가장 먼저 시작하게 하셨다.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결국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언약이 이어지는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어머니인 사라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창 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이삭은 리브가를 맞이하면서 새 장막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그녀를 맞아 들였다. 세대에서 세대로 언약이 이어진 것이다. 리브가는 또 이 장막에서 천만인의 어머니로, 원수의 성문을 취할 세대를 길러낸 것이다.
롬 8:19, 21은 말한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사단에게 종노릇하는 세상의 피조물들은 사실 하나님의 아들들, 언약의 세대들이 일어나길 고대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과 공도를 행하는 언약의 세대들이 일어나 원수의 성문을 취하길 바라고 있다.
유대인들은 철저히 그들의 유대인으로서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장 나라로 온 열방에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을 일으키는 선교 사명에 실패했다. 오늘날 교회는 복음을 열방에 전하는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물려 주는 데 힘을 쏟지 못하는 것 같다. 주일학교, 청년들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다. 세속주의, 인본주의가 일어나면서 교회에서 자란 아이들이 세상 조류에 휩쓸려 교회를 떠나고 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 중 7-80%가 입시공부하는 와중에도 저버리지 않았던 신앙을 대학 입학 후 저버린다는 것이다. 입학하자마자 시작되는 취업 경쟁과 난잡한 세상 문화 속에서 수많은 자녀들이 자신의 신앙을 떠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어머니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언약을 그 자궁에 품은 어머니, 그리고 자녀를 낳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양육하는 어머니, 그리고 결국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주는 어머니가 필요하다. 그 어머니는 사라처럼, 리브가처럼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원수의 성문을 취하는 언약의 세대들을 길러내는 자이다. 그것이 자녀를 대학에 잘 보내는 것보다 중요하다. 한국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어머니로 살아가는게 참 힘든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남들보다 뛰어나게 하려고 자식을 위해 애쓴다.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다녀온 아이가 귀국해서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엄마, 이젠 뭐해야 돼요?”
우리가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 우리는 유대인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는지 배울 필요가 있다. 유대인 어머니들은 자녀의 근본 소유권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맡긴 자녀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키우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 유대인의 격언에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양쪽을 다 죽이지만, 개성을 비교하면 양쪽을 다 살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유대인을 뜻하는 ‘히브리’라는 말은 강 건너 편에서 온 사람이란 뜻이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혼자서 다른 편에 서다’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남들보다 뛰어나라고 요구하는 대신 남과 다른 사람이 되라고 자녀들에게 주문한다.
유대인 에디슨의 이야기를 알 것이다. 에디슨은 학교 선생님에게 2더하기 2가 왜 4인지 물었다고 한다. 태양은 왜 빛이 나는지, 비는 왜 어두울 때 내리는지 질문했다고 한다. 결국 수업에 적응 못하고 에디슨은 학습장애아로 판정받아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한다. 그 때 어머니가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아들은 결코 저능아가 아닙니다. 단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뿐입니다. 그것은 어머니인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집에서 가르치겠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믿음이 남들과 다른 에디슨의 장점을 키워준 것이다.
사회 평가 시스템에 의해 우리 자녀들이 평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우리 자녀들은 완전한 자들이다. 각자의 부르심이 있는 자들이다. 이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원수의 성문을 취할 자들이라는 믿음을 가지라. 이 비전에 따라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어머니가 되라. 그리하여 죽어서도 신앙이 유산처럼 이어지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욥바교회 샤밧설교 2015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