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행전 4 세겜

성지행전 4 세겜: 섬길 자를 택하라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모든 백성들과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 24:14-18)

 

척 콜슨은 닉슨 대통령의 남자였다. 1969년 3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닉슨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된다. 그는 대통령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닉슨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어 관리했고, 그의 재선을 위해서는 친할머니도 밟고 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의 활약으로 닉슨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다. 그러나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진다. 그 일을 주도했던 사람으로 그는 큰 혼란에 빠진다. 승승장구했던 그의 인생에 풍랑이 찾아온 것이다.

그는 지친 마음에 친구인 톰 필립의 집에 찾아 간다. 필립은 그에게 C.S. 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를 내밀고 한 챕터를 읽어 준다. ‘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자만, Pride는 가장 큰 죄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Pride를 최고 가치로 알고 살던 사람이었다. 항상 대통령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말에 자만했던 사람이었다. 집으로 돌아 가는 차안에서 그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터진다. 그의 삶이 얼마나 자만과 오만으로 가득했던 삶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의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게 된다.

그가 훗 날 쓴 자서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 “교도소에 수감되며 나는 어떤 면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권력, 영예, 자유, 심지어 정체성까지. 당시 나는 죄수번호인 23226으로 불렸다. 교도소에서 작은 흑백 TV 통해 내가 3년반 동안 충성스럽게 섬겼던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순간이었다하지만 나는 다른 면에서 모든 것을 찾았다.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것이다.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며 극적으로 새롭게 되었다” 7개월의 수감생활을 통해 그가 이전에 섬기던 ‘성취’라는 우상은 힘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거듭나게 된다.

누구를 섬기는가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올려놓고 섬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를 따라 들어간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도 누구를 섬기는가는 중요한 문제였다. 오늘은 세겜 땅에서 있었던 섬김의 결단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BC 1400년 전 ,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선언했던 여호수아의 모습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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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세겜 성터 (뒤로 그리심산이 보인다)

 

약속의 세대를 이끌고 가나안 정복을 이룬 여호수아는 이제 나이가 많아 늙었다. 그가 죽기 전 유언을 남기기 위해 이스라엘 온 지파를 세겜으로 부른다. 그리고 온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언약을 갱신한다. 이미 했던 언약을 다시 새롭게 한 것이다. 왜 세겜일까? 성막이 있던 실로가 아니라 왜 세겜이었을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이곳에서 처음 언약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난다. 갈대아 우르는 당시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였다. 고고학의 발견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은 단순한 유목민이 아니라 도시 귀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실리콘밸리에서 돈 잘 벌면서 호화호식할 수 있었던 사람이 문명을 등지고 가나안 땅에 온 것이었다.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그 땅에서 첫 예배를 드린다. 처음 언약을 확증하신 곳, 그곳이 바로 세겜이었다.

세겜은 이후에도 언약과 관련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스라엘의 국부 야곱은 20년의 밧단아람의 피난생활을 마치고 가나안땅 세겜으로 돌아온다. 갈 때는 혼자였지만 올 때는 4명의 아내와 12명의 아들, 딸 하나, 그리고 많은 가축들과 노비를 이끌고 왔다. 그런데 디나의 강간 사건으로 그 땅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다. 하나님께서도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야곱이 이 세겜에서 한 일이 있다. 지난 날들의 우상들을 묻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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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겜 성벽

 

창 35:3-4,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야곱은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과 함께 온 모든 사람들이 이전 문명도시 하란에서 의지하던 모든 영향력들을 매장해버린다. 벧엘에서의 부흥과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 있기 전, 야곱은 이전에 의지하던 우상들을 철저히 정리한 것이다. 하나님 아닌 다른 우상들을 묻어버린 곳, 그곳이 세겜이다. 라헬이 가져왔던 드라빔도 이곳에 묻혔을 것이다. 땅 파보면 나올 수도 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올 수 있는 풍요에 대한 기대를 묻어버린 것이다.

세겜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 올 때마다 그들의 과거를 묻어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새 출발을 다짐했던 곳이다. 애굽에서 430년간의 종살이를 마치고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왔다. 모세는 들어오지 못하고 여호수아가 이 백성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 이르러 언약을 갱신한 곳이 바로 세겜이었다.

수 8:33-34,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여호수아가 낭독한 말씀은 신명기 27장부터 나오는 축복과 저주에 관한 말씀이다.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기면 망할 것이고, 하나님만 섬기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세겜에서의 언약갱신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자리잡고 있던 우상의 영향력을 끊어내기 원하셨다. 애굽문명의 영향력도 이 세겜에서 묻힌 것이다.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언약이 다시 한번 낭송되면서 출애굽 2세대의 마음 안에 하나님을 향한 언약의 갱신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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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겜 성문

 

여호수아는 그가 죽기 전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언약의 갱신이 일어나길 원했다. 그래서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세겜으로 백성들을 모은 것이다.

수 24: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그는 모든 지파들 앞에서 아브라함 때부터 가나안 정착 까지의 과정들을 회고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들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결론처럼 말한다.

수 24: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우상이 뭐길래 여호수아는 죽는 순간까지도 우상을 치워버리라고 백성들에게 명령하고 있는 걸까?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은 유프라데스 강 지역 바벨론 신들이다. 당시 모든 우상숭배의 뿌리는 바벨론에서 시작되었다. 수메르 신화에 이난나라는 여신은 바벨론에서는 이슈타르로, 가나안에서는 아스다롯으로 불린다.  ‘하늘의 여왕’으로 불리던 여신이었다. 여기서 다산과 풍작을 기원하는 여신숭배가 시작된다. 여신숭배에는 반드시 성행위가 종교의식의 하나로 거행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여신이 성적으로 흥분해서 땀을 흘리면 비가 많이 와 농사가 잘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신을 흥분시키기 위해 신전에서 여사제를 두고 성행위를 했다. 인간의 행위를 보고 신이 자극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봄철 이슈타르 축제 기간에는 모든 여성이 남성들과 자유로운 성관계를 할 수 있었다.

신전 매춘행위에 대해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렇게 기록한다. 모든 여자들은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여신의 신전 앞뜰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낯선 남자와 성관계를 가져야 했다.” 음란한 성행위가 종교적인 의무로 시행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는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의식도 행해졌다. 풍요에 대한 열망이 음란한 종교의식과 함께 고대 근동지역에 퍼져나갔던 것이다. 이 여신숭배가 가나안 땅에서도 너무나 강렬한 보편문화로 자리잡았기에 성경에서는 그것을 끊어낼 것을 강력히 명했던 것이다.

우상을 섬겼던 이전 세대의 영향력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옷을 바꿔 입고 우상은 새롭게 탄생한다. 15절에서 여호수아는 말한다.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여호수아 당대에 과거의 우상만이 아니라 현재의 가나안 족속의 신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언약궤를 앞세우며 요단강을 건넜던 세대였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경험했던 모태신앙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새로운 우상 바알과 아스다롯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강 저쪽에서든지, 애굽에서든지, 지금의 가나안에서든지 우상은 항상 존재했다. 삶의 중심에서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항상 존재해왔던 것이 바로 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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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있는 곳으로 벌은 난다

 

과거와 같은 우상숭배는 없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나는 그런 우상숭배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문화와 시대라는 옷만 바꿔 입었지 우상은 항상 우리 가까이 존재한다.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풍요의 신, 성취의 신, 쾌락의 신은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한 우상의 열매와 함께 우리 시대에 살아 있는 것이다.

1985년에 닐 포스트만은 “Amusing ourselves to death”라는 유명한 미디어 비평서를 쓴다. 대중매체와 오락산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죽도록 즐기는 기술 문명 세계에 살게 된다는 진단이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살라’는 메세지를 듣는다. 실제로 온라인 게임이 너무 재밌어서 하루 평균 20시간씩 게임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고등학생도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시간, 재물, 음식, 성, 일… 이런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남용했을 때 그 결과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착각한 것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에게 마음을 빼앗겨 섬기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섬김은 배타적인 것이다. 하나를 섬기면 다른 대상은 섬길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런 이유로 여호수아는 한 주인을 섬길 것을 결단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수 24:15,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 말은 선택의 여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는 것이다. 그는 바로 ‘오늘’ 선택할 것을 촉구한다. 신앙의 결단을 당장 하라는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에게 신앙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면…, 사업이 좀 안정되면…,  좀 더 진급하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앙문제는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신앙은 결국 누구를 섬길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문제는 기준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 마음이 좀 평안해질까? 내가 하는 일이 잘 될까?’ 이렇게 생각하면 신앙의 기초를 잘 못 놓는 것이다. 신앙은 ‘내가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로서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하고 그냥 이대로 살다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신앙은 ’내 영혼이 영원히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미리 결단 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 시대의 우상을 따라 자기  자신을 섬기는 인생의 목표를 갖게 된다. 나의 성공이 인생의 목적이 된다. 돈과 성취가 우상이 된다. 풍요를 하나님보다 더 섬겼던 바알신앙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누구를 섬길 것인가는 그래서 ‘지금’ 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는 여호수아의 도전에 백성들이 반응한다. 16, 18절,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 [18] 여호와께서 모든 백성들과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그 날 이스라엘 온 백성은 세겜에서 다시 하나님 앞에 언약을 맺는다. 그리고 큰 돌을 가져와 상수리나무 아래 세운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말한다. 24: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언약을 새롭게 다짐하는 증거를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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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세겜(텔 발라타)에 있는 석비

지금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의 언약은 어떠한가? 하나님과 여러분이 따르는 우상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개혁하기로 결단해야 한다. 세겜은 그 자체로 거룩한 곳이 아니다. 여러분이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안전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주일날 꼬박꼬박 교회 나온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다. 언약은 세대를 통해서 자녀들에게까지 계속해서 갱신되어야 한다. 갱신되지 않는 신앙에 우상이 자라기 때문이다. 우상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질투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도 순전해서 당신의 사랑을 우상과 나눠 갖지 않으신다.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결국 사망의 길로 간다. 반면 우상에게 나뉘지 않는 마음은 결국 생명으로 인도된다. 따라서 우상 때문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다. 우리를 위한 가장 의롭고 완전한 사랑이다.

 

여호수아는 이렇게 기록한다. 24: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뭔가 뒤가 예견되는 말씀이다. 여호수아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기의 혼돈을 맞는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 550년이 지난 시점에 세겜에는 바알 신전이 들어선다. 바알을 섬기던 이세벨을 아내로 맞은 아합왕 때다.  왕상 16:32-33,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바알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들… 그 중독에서 돌이키게 하기하여 하나님께서 쓰신 방법이 있다. 비를 내리지 않으신 것이다. 그들이 섬겼던 바알은 날씨를 주관하는 신이었다. 비를 내리는 신이었다. 비를 내려 풍요를 준다고 믿었던 신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거짓신의 핵심 정체성을 공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이 서는 곳에 가뭄을 주실 때가 있다. 성공을 위해 너무 바삐 살다가 건강을 잃거나 정작 소중한 관계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하나님이 가뭄을 주실 때.. 그 때가 돌이키기 위한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돌이켜야 한다. 가뭄 속에서 내가 그동안 섬겼던 신이 무엇이었는지 봐야 한다. 그 우상이 얼마나 거짓신이었는지 봐야 한다. 건강의 가뭄, 재정의 가뭄, 중단된 축복 속에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전부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읽어내야 한다.

척 콜슨은 감옥에 갖히는 인생의 가뭄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는 7개월의 수감 생활을 통해 교만의 신, 성취의 신을 그곳에 묻어 버린다. 그리고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겠다는 결단을 하게 된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뒤 교도소 선교회를 설립한다. 그리고 많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2012년 생을 마감한다. 그는 삶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였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속했는가’로 규정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

세겜은 우상이 묻히고 하나님과의 언약이 새로워졌던 곳이다. 그 언약의 증거가 기념비로 세워진 곳이다. 오늘이 가기 전에 여러분의 마음을 지금 빼앗고 있는 우상이 무엇인지 돌아 보는 은혜가 있길 원한다. 여러분의 마음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 여러분 꿈에 나오는 것, 그것이 여러분이 섬기는 우상이다. 그것을 묻어버리는 결단이 있길 원한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 한 분만을 여러분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결단이 있게 되길 바란다. 바로 오늘 그러한 결단이 있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14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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